<차별을 조장하는 차별금지법?>
이 겨울, 북극곰을 동경하며 겨울잠을 준비를 하던 사람들마저 벌떡 일어나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법무부가 입법 예고한 차별금지법(안)에서 차별범위 항목 중 성적지향, 학력, 병력, 가족형태 등 7개 항목이 제외되었다. 입술도, 손등도 까칠해지는 계절에 마음마저 서늘해 진 사람들은 경악한 얼굴로 대책회의를 시작했다. 어찌하여 이 나라에서는 잠도 마음껏 못 자는가. 오호! 통재라. 애재라.
지난 10월 2일 법무부에서 발표한 차별금지법(안)의 주요 골자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 및 보호처분 전력, 성적 지향, 학력, 사회적 신분'등을 이유로 하는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었다. 이 법의 입법을 위해 국가인권위원회는 근 4년 동안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법안 검토 및 여론 수렴과정, 차별당사자들의 목소리를 통한 의견조율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그러나 차별 금지법이 예고된 지 한 달 만에 별다른 설명도 없이 차별금지 대상 항목이 20개영역에서 13개로 대폭 축소되었다. 이미 7가지 조항이 삭제되어 법제처로 넘어갔으며, 11월 12일 법사위원회가 검토를 시작하면 일주일 안에 7개 조항이 삭제된 차별금지법이 통과될 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차별’이 필요했기에 이토록 비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차별금지 조항을 삭제한 것일까? 차별금지가 ‘취소’된 항목은 성적 지향, 학력 및 병력, 출신국가, 언어, 범죄전력,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이다. 특히 이번에 ‘차별금지법’은 ‘동성애차별금지법’이라고 오인될 정도로 ‘성적 지향’에 대한 조항이 문제시 되었다. 각종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나서서 주님의 이름으로 동성애를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계속해서 동성애를 ‘나쁘다’고 가르쳐야겠으니 마음껏 차별하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성적지향의 문제에 선,악 개념을 결부시키는 수준이라니.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하다. 동성애를 긍정하면 아이들에게 윤리교육을 어떻게 시키느냐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학생들의 다양한 성적지향을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은 발언이다. 한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제대로 인식할 수 없는 것이 과연 윤리이고 ‘선’이 될 수 있는가? 그런 ‘선’은 없는 것이 낫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10월 2일 법무부의 입법예고가 있은 후 발 빠르게 움직인 보수 기독교 단체들과 이에 대한 법무부의 반응이다. 보수기독교단체들은 자신들의 ‘표현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차별금지법 수정을 강력히 요구해 왔다. 이뿐 아니라 보수 언론, 재계에서는 학력, 병력, 출신국가와 범죄전력 그리고 가족형태 및 가족 상황 등의 차별금지가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막는다며 반대의사를 표했다고 한다. 이 7가지 조항들에 한국사회에서 특히 차별이 심하다고 지적되고 있는 성적지향과 학력, 출신국가 등이 포함된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한국 사회에서 문제시 되고 있으며 꼭 지적되어야 할 내용이 빠져 있는 것이다.
차별반대법의 훼손을 주도한 기독교 단체는 성시화 운동, 한기총, 한일기독의원연맹 등인데 이들은 단순한 종교단체로 보기에는 사회적 영향력이 매우 크다. 성시화 운동은 도시를 성스럽게 만들자는 일환으로 이명박의 ‘서울시 봉헌’ 논란이 시작된 곳이고, 한기총은 보수기독교 단체로 각종 보수 집회를 조직하고 있다. 또 한일기독의원연맹은 마틴루터킹 평화상을 받을 정도로 국제적 신망이 있는 단체라고 한다. 이들은 현재 동성애를 적으로 설정하고 강력한 응집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성적 지향’의 ‘차별’을 주장하며 강력하게 연대하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이번 법안에 대한 문제 뿐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다양한 성적지향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외치며 자신들의 연대를 공고히 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당황스러운 일은 이들의 ‘차별옹호’가 차별‘금지’법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겠다던 법의 취지는 어느새 ‘차별’을 조장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누군가의 성적지향, 학력, 가정형태 및 가족상황, 출신국가, 언어, 범죄전력, 병력에 대해, 이미 그렇게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해 무슨 근거로 차별여부를 논한단 말인가. 그들을 인정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논의하겠다는 이들의 인권의식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가. 아니, 애초에 그런 것이 있기는 했을까. 과연, 동면 들었던 곰도 어이쿠! 하고 깨어날 일이다.
여러 가지 형태로 꾸려지는 비혼 여성들의 삶을 고민하고, 지지해온 <언니네트워크>는 이번 차별금지법의 훼손에 더욱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 현재의 법안대로라면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똑같은 모양으로 자신의 삶을 그려나가야 한다. 차별을 피하는 방법이 알고 싶으신가?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살아가면 된다. 훼손된 법안님 가라사대, 당신이 남자라면 여자를, 여자라면 남자를 사랑해야한다. ‘성적지향’이라는 말을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다. 성적지향은 다양하고 개별적으로 작동하는 상황 속에서 해석될 수 있으며 트랜스 젠더, 양성애자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지만, 어차피 ‘차별’받지 않고 사는 데는 무식이 약이다. 성적지향이 자신과 다르면 마땅히 차별해야한다고 울부짖으시는 저 분들도 그저 성적지향은 동성애 아니냐고, 지금도 출산율이 떨어지는데 인구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고, 하시지 않는가. 오죽 무식하지 않고서야. 내, 기필코 너를 차별하고 말리라, 는 목소리를 내는 일이 어디 쉽겠는가. ‘차별’을 피해가려면 아직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열심히 건강관리를 하여 ‘병력’을 없애라. 타고난 병력이 있더라도, 극복해라. 그리고 그 정신력으로 이 한 몸 뽀사지게 공부하여 ‘학력’도 높여야 한다. 결혼은 선택이 아니다. 비혼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거나 실험적인 형태의 가족을 꾸릴 생각은 애초에 버려야 한다. 당연히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다. 물론, 어떤 일이 있어도 이혼은 하면 안 된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결혼생활이 불행할지라도, 가정 폭력이 있더라도, 모두 감내하고 살아내야 한다. 과연, 이런 세상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차별받지 않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싱싱한 아이디어로 일상을 가꾸는 황홀한 경험들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 단 한명의 이탈자도 없이 말이다. 이 얼마나 끔찍한 전체주의적 발상이란 말인가. 자신이 원하는 가족의 형태를 꾸리며 살아가려면 ‘차별’을 감수하라는 것이다. 이미, 자신의 삶을 가지고 다양한 형태의 실험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이 법안의 폭력성을 절감할 것이다. 익숙하지 않지만 매력적인, 대안적 삶에 대한 모색은 쓸모없는 것이 된다. 네가 무엇이관데, 우리의 빛나는 시도를 막는다는 거냐? 하고 물으니 그 이름이 <차별금지법>이란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레즈비언 가정이나 이혼여성들,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이 받는 차별은 ‘당연’한 것으로 묵인된다. 결혼이외의 형태로 공동체를 꾸리거나 이혼 후에 멋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가치를 멋대로 폄하하려는 시도는 반드시 저지되어야 한다.
<차별금지법>에서 7개의 조항을 삭제하며, 보호받을 수 있는 차별과 그렇지 않은 차별을 설정하려는 발상 자체에 분노한다. 당신 앞에 서 있는 A씨는 어떤 조건에 의해서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지금 법무부는 보수언론과의 타협을 통해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를 분열시키고 있다. 차별당해도 괜찮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멋대로 나누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그런 권한을 주었단 말인가. 차별금지 조항을 한달도 안 되는 기간에 손쉽게 빼면서 ‘여론’에 따른 것이라고 말한다. 인권 문제를 마치 정치 협상처럼 이해하고, 다루고 있다. 입법의 의의와 취지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일을 진행해야 할 텐데 잡음이 생기자 아무렇지 않게 7개나 되는 법안을 삭제했다. 7개의 차별항목이 빠진다는 것은 차별금지법의 본질적 의미를 모조리 훼손하는 일임이 너무나 자명하다. 13개의 항목을 들어 눈속임을 하려는 얄팍한 수작은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특정집단의 이해에 따라 누군가 ‘는’ 차별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차별금지법은 이미 차별‘금지’법이 아니다.
스스로의 상상력부족을 깨닫지 못하고 이 세상에는 단 하나의 방법만이 선이며, 가능하다고 믿는 이들의 굳어버린 뇌에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그리고 이 무지함의 소산이 법제화되어 사회적 소수자들의 다양한 삶을 규제하고, 그 존재를 부정하는 일을 강력하게 규탄한다. 집 나간 양심과 상식, 그리고 멈춰버린 자신의 뇌를 바로보고 잘못을 깨달아 하루 빨리 바로잡기를 바라는 바이다. 훼손된 차별금지법안대로라면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특정한 차별을 긍정하고 승인하는 법안이 될 것이다. 또한, 앞으로 논란이 될 때마다 차별금지 조항들을 삭제하는 식의 일들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어느 누구도, 어떤 방식에 의해서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상식이 이 나라에서도 ‘상식’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언니네트워크>는 훼손된 차별금지법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다양한 가치가 긍정될 때까지 연대하고, 투쟁할 것이다.
